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르망디 상륙작전 (문단 편집) == 기타 == * D-Day의 어원은 departed, decision, 여러 가지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모두 틀린 것이다. 1944년 6월에 침공을 하려는 중, 6월의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아 날짜가 정해지지 않았다. 당시 종군 기자의 말에 의하면 (정해지지 않은) Day-(정해진 침공 날짜) Day가 합쳐져 D-Day가 된 것이다. 관련 서적만 읽어봐도 결행이니 결정이니 뭐니 하는 거 증언해준 영국, 프랑스, 캐나다 병사들부터 지휘관 입에서도 그런 말은 안 나온다. Day-Day가 맞는 표현이다. 같은 의미로 날짜가 아닌 특정 일의 개시 예정 시각은 시각을 뜻하는 Hour에서 따와 H-Hour라고 한다. * 몇몇 사람들은 [[오버로드 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노르망디 상륙(넵튠 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개시 전에 [[영국]] 해협의 기뢰를 제거하고 조류를 파악해 최적의 이동 루트를 만들고 제해권을 장악하고 10,000척에 달하는 배들을 해상에서 정리하는 작업.]을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으나, 실제로 공식적인 분류에서는 각각 'Battle of Normandy', 'Invasion of Normandy', 'Normandy Landings(Operation Neptune)'으로 구분하고 있다. 각각 오버로드 작전은 북부 프랑스에 상륙하여 파리까지 진격, [[팔레즈 포위전]]을 마치는 8월 말~9월까지의 모든 작전을 통틀어서 말하는 작전이며,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이 오버로드 작전의 하위 작전으로 7월 말 캉까지 진출하는 [[노르망디]] 지역의 작전이다. 노르망디 상륙 또는 해왕성 작전은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하는 1일차 작전만으로 한정해서 사용한다. *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전적지 여러 곳을 여행할 수 있다. 노르망디 여행에 관심 있다면 여행기 [[http://naver.me/5UjNbW7L|링크]]를 참고하자. 대중교통이 불편한 지역이라 렌터카를 빌리는 것이 낫다. * 노르망디에서 미군에 포로로 잡힌 한국인의 사진인 [[노르망디의 한국인]]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 상륙작전을 실시하기 직전인 1944년 5월에 발생한 에피소드. 영국 신문인 [[데일리 텔레그래프]] 지에 [[십자말풀이]] 문제가 올라왔는데, 여기에는 '[[유타 주|유타]]', '[[오마하]]', '[[오버로드]]', '[[금|골드]]', '[[주노]]' 등의 용어가 등장했다. 이는 상륙작전 및 주요 상륙지 등의 암호명이었다. 연합군 사령부는 발칵 뒤집혔고, 문제의 출제자인 학교 교사 레너드 다우와 신문 편집 담당자를 [[MI5]]가 잡아가 심문했지만 결과는 무혐의였다. 기밀 유출과는 무관한 우연의 일치였던 것. 훗날 1984년에 이사건의 진상이 밝혀졌는데, 당시 그 교사의 학생 중 한명이 근처의 군기지를 돌아다니다가 군인들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이 의미심장한 단어들을 들었고, 그 교사가 십자말 풀이에 쓸만한 단어를 찾을때마다 이 단어들을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피소드/2015년#s-24|2015년 6월 14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34247414923540002|다루었다.]] * 2007년 3명만으로 오마하 비치를 재현한 용자들이 화제가 되었다. CG의 힘은 위대했다. 정확히는 [[BBC]] 역사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타임워치(Timewatch)> 시리즈 제작진의 용자짓. 노르망디 상륙작전 특집편 <피의 오마하> 촬영 때의 일이다. 이 때 해설자는 [[탑기어]] 호스트인 [[리처드 해먼드]]. [[https://youtu.be/WRS9cpOMYv0|#]] * 히틀러는 연합군의 상륙 작전이 계획되기 전에는 노르망디가 연합군의 상륙 지점이 될 것이란 걸 예측했다고 한다. 물론 [[백년전쟁|옛날에도 노르망디는 영국군의 주요 상륙지였다.]] 하지만 노르망디가 칼레보다 전략적으로 떨어지는 위치였던 데다 히틀러는 전략 전술과 관련된 군 관련 지식은 전무했기 때문에 독일군 수뇌부는 그럴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했고, 나중에는 히틀러 자신도 노르망디에 연합군이 상륙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전사한 프랑스군 제1해병코만도대대(1er bataillon de fusiliers marins commandos) 소속 오귀스탱 위베르(Augustin Hubert) 해군 중위의 이름은 [[프랑스 해군]] 특수부대 중 하나인 [[코만도 위베르]]에 이어진다. * [[2011년]] [[11월 29일]] [[이란]] 시위대가 [[테헤란]] 주재 영국 대사관을 습격했을 때, 영국 대사관은 [[빅토리아 여왕]]과 [[에드워드 8세]]의 유화 초상화 같은 역사적 유물이 파손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 문서가 도난당했다. 이 문서의 도난에 대해 영국 외교관들은 [[블랙 코미디|"혁명수비대의 번역사들이 충분히 오랜 시간을 들여 이것이 70년 전 프랑스에서 있었던 침공 작전임을 깨닫기를 바란다"]]고 가디언 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혔고, 다른 이들은 혁명수비대가 이 문서들과 다른 문서들로 인해 혼란을 겪길 원한다고 대꾸했다. [[http://flager8.egloos.com/2825286|출처: 서방의 대규모 침략계획, 유출되다]]. * 20세기 최고의 사진 작가로 유명한 [[로버트 카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상륙정에 직접 타서 다른 현역 병사들과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오마하 해변의 지옥도를 생생히 촬영했다. 하지만 운이 없게도 촬영 이후 필름을 현상, 인화하는 과정에서 기술자가 실수로 온도를 너무 높게 맞추는 바람에 대부분의 필름이 녹아 버렸고, 남아 있는 사진은 10장에 불과하다. 하지만 카파의 이 사진들은 오마하 해변의 참상을 생생하게 기록해 주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후에 카파가 찍은 사진은 오마하 해변이 아닌것으로 밝혀졌고 100여장의 사진을 찍었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격전이 벌어지지 않은 곳에서 15분여간 11장의 사진을 찍고 상륙정을 타고 다시 복귀했다는것이 밝혀졌다.] * 다만 로버트 카파의 사진 이외에도 다른 기록은 존재했다. 서부극의 거장으로 유명한 감독 [[존 포드]][* 해군 예비역 소령으로서 OSS에 배속하여 활동했다.]와 그의 촬영팀 역시 최전선에 뛰어들어 당시 현장을 총천연색 동시 녹음 영상(!)으로 담아두었다. 그러나 영상 속 장면들이 편집을 거쳤음에도 너무나도 끔찍해, 영상의 대부분은 공개되지는 못했다. 1964년 'The American Legion's Megazine' 잡지에 실린 감독의 회고에 따르면 영상들 모두 정부 기밀자료로 분류됐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보존 와중에 생긴 착오로 인해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유명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또한 종군 기자로 이 전투에 직접 참전하였는데,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골 때리게 하는 일화가 여럿 있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실시되기 전 5월 25일, 런던에서 등화관제 중에 차를 몰다가 물탱크를 들이받아 뇌진탕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나흘 뒤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하고자 병원에서 몰래 빠져나왔다. 그 뒤에 작전을 준비하는 연합군을 동행 취재하면서 그가 소속되어있는 소대가 가장 먼저 노르망디 땅을 밟아야 한다고 부추겨 소대장을 곤란하게 만들었으며, 종군 기자는 총을 휴대할 수 없음에도 작전 때 총을 들고 독일군 몇몇을 직접 사살하기도. 그 이후로도 건물 안에서 포격을 당하는 와중에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웅크려 몸을 보호했는데, 헤밍웨이 혼자서 아무렇지 않게 포격을 당하는 건물 내부를 돌아다녀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연실색시킨 등, 무모하고 객기 어린 행동을 자주 했다고 한다. * 노르망디 상륙작전 66주년 기념 다큐멘터리에서 당시 오마하에 상륙한 보병, 유타 해안에 상륙한 보병, 그리고 해변 방어에 참전한 독일군 생존자들이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방송 후반에 이 셋이 만나자 '우리가 그날 같은 곳에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 [[스웨덴]]의 파워메탈밴드 [[Sabaton]]의 [[https://youtu.be/_Aydh6JGGFM0|'Primo victoria']]가 이것을 배경으로 한 노래다. * 유튜버 [[SMG4]]의 영상 중 'World War Mario' 편 초~중반부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모티브로 한 가상 전투가 연출된다.[* 올린 시기가 개전 75주기임을 감안하면 전사한 병사들을 애도할 목적으로 넣었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 [[https://series.naver.com/ebook/detail.nhn?productNo=4069220&isWebtoonAgreePopUp=true|출처]]에 따르면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독일군 병사들이 받은 충격도 상당히 컸던 것으로 보인다. 당장에 해안선 벙커에서 연합군 함대를 목격한 독일군 병사가 '''"그것은 독일의 종말이었다."'''라고 말했을 정도. 사실 당시 독일군 병사들에게 서부전선은 비록 상륙작전을 대비해야 하긴 했지만, 소련과 섬멸전을 벌이던 [[독소전쟁|동부전선]]에 비하면 꽤 널널했고 파리로 휴가를 가서 프랑스 아가씨랑 놀 수도 있는 꿀 빠는 곳으로 취급받았다. 그런데 그런 곳이 갑자기 전쟁터가 되었으니 상륙한 연합군을 막기 위해 출동한 전차부대 장교도 [[당나라 군대|한 손엔 프랑스 아가씨를, 다른 손엔 술병을 들고 취한 채 군가를 고래고래 부르며]] 퇴각하는 병사들을 보고 "이제 독일은 끝났다."고 절망했을 정도. 사족으로 이 전차부대는 연합군 부대를 막으려 진격했다가 영국군의 대전차포 세례를 맞고 후퇴해야만 했다. * 이날 투하된 [[제101공수사단]] 인원들 중 조셉 배얼 하사라는 인물은 무기를 모두 분실한 채 프랑스 레지스탕스와 합류해 사보타주를 벌이다 발각, 체포당해 독일-폴란드 국경까지 끌려가 수용소에 수감됐는데, 여기서 두번의 시도 끝에 탈출 성공해 '''한참이나 떨어진 바르샤바까지 가서 소련군에 합류해 다시 교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심지어 그런 그를 받아들인 사람은 '''인류 최초의 여성 전차장 알렉산드리나 그리고리예브나 사무센코였다.''' * 2021년 6월 6일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전몰한 연합군 장병을 기리는 동상의 제막식이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 마을 베르쉬르메르에서 열렸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12442861|#]] * [youtube(Rh51ZR6vfPk)][youtube(6pt5cR8S2hw)] 상륙 75주년을 기념하는 [[제75레인저연대|미 육군 레인저]]. * 당시 [[암구호]]는 '플래시(Flash)/썬더(Thunder)'였다. 이는 독일어에 'Th'발음이 없다는 것에 착안해 답어에 넣은 것이다. *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프랑스군 [[마지막 생존자]]인 [[프랑스 해군]] [[해군 코만도|코만도]] 출신 레옹 고티에가 2023년 7월 3일 프랑스 칸 병원에서 향년 10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2023/07/05/Y7FPEZSPZ5C7LMKHZDHLARSPVU/|#]] * 이른바 '모히칸 스타일'이 유행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상륙작전 당시101공수사단은 작전 투입을 앞두고 장병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머리를 모히칸식 헤어스타일로 깎았는데, 이를 계기로 민간에도 모히칸 스타일이 퍼지게 된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